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살다간 김종삼 - 장석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살다간 김종삼 장석주 『십이음계』 한 늙고 추레한 노인이 가난한 산동네의 구멍가게에 들어온다. 무허가 집들이 들어찬 산 8번지의 한 구멍가게다. 그 동네에는 개백정도 살고, 상처한 복덕방 영감도 살고, 막노동꾼도 살고, 술집 나가는 아가씨도 산다. 과자 부스러기, 라면, 소주, 일용 잡화 몇 가지로 겨우 구색을 갖춘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다. 마침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없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얼른 소주 두 병을 집어 든다. 밖으로 나온 노인은 구멍가게에서 훔친 소주 두 병을 옷 안에 꼭 숨긴 채 어디론가 허청허청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저 유명한 시집 『북치는 소년』의 시인 김종삼(金宗三, 1921~1984)임을 알아볼 이는 거의 없을 터. 나중에 소주 두 병 값을 갚긴 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