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K의 부엌 - 천서봉

공산(空山) 2023. 9. 10. 11:52

   K의 부엌 

   천서봉

 

 

   이제불행한 식탁에 대하여 쓰자 가슴에서 울던 오랜 동물에 대하여 말하자
   가령 상어의 입속 같은 검은 식욕과 공복의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는 박쥐의 밤들
   들개의 허기늪처럼 흡입하는 아귀의 비늘과 그 비늘이 돋는 얼굴에 대하여 말하자
   하여 그 병의 딱딱한 틈에서 다시 푸른 순()을 발음하는 잡식성의 세계사에 대하여
   말을 가둔 열등한 감자와 그 기저의 방 속에서 끝내 다복할 주검에 대하여 말하자
   기어이 모든 숨을 도려내고야 말아름다운 칼들 가득한 K의 부엌에서
   딱딱하게 굳어 기괴한 신탁의 소리를 내고야 말 우리의 혀에 대하여 말하자
   간이나 허파 따위를 담고 보글보글쉼 없이 끓어오르는 냄비 속 레퀴엠에 대하여
   말하자우리가 요리하고픈 우리의 부위왼손이 끊어내고 싶던 그 왼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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