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박두규
강가를 걸으며 산마루에 떠오르는 초저녁달을 봅니다. 이 어두워진 저녁 산모롱이 어디쯤에 아직도 빛을 다 여의지 못한 동자꽃이나 물봉선 같은 꽃들이 남아 있겠지요. 나는 아직 한 번도 빛에 이르지 못한 내 안의 깊은 어둠 속 꽃 한 송이를 떠올려 봅니다. 세상의 꿈이란 꿈 다 꾸어도 그 꽃 한 송이 이 강가에 살지 못하고, 오늘도 내 안의 어둠을 서성일 뿐입니다. 달빛 젖은 하늘에 별들이 촘촘해지면서 나는 아직도 이 어둠을 떠도는 다하지 못한 빛들의 쓸쓸함을 봅니다. 이제야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숲에 들다』 애지, 2008.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北 - 이가림 (1) | 2023.09.20 |
---|---|
밤의 푸가 - 이혜영 (0) | 2023.09.19 |
도굴 - 이덕규 (0) | 2023.09.14 |
K의 부엌 - 천서봉 (0) | 2023.09.10 |
새로운 기쁨 - 유계영 (0) | 202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