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개암에 얹는 이야기 - 임재정

공산(空山) 2021. 9. 17. 10:48

   개암에 얹는 이야기
   임재정


   1.

 

   개암이 먹고 싶다던 먼뎃사람이 생각나서 약탕기 속인 듯 갈볕이 끓어서
   기껏 개암인데 싶어서 산길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내게는 연緣 아니 닿는 개암

   밤나무 아래 흩어진 되 남짓 알밤과
   탐스레 무른 다래 알만 주워 돌아왔다
 
   2.

 

   가을은 어느 먼 데가 얼비치는 증세

   먼 데 어디 거긴
   낭떠러지, 바위산 그대
   그저 나는 알밤이나 한 되 삶고
   심중에 이빨달린 싹이 무성하기를 바랄 뿐

   3.

 

   나는 아무데도 아니 가고
   아무 것도 아니 탐하려네
   구역질하듯 곡진히 다 따른 약탕기이므로
   내처 당신이나 다리려네

   아흐레아, 그렇거니 당신은 꺼칠머리 억샛잎 먼데사람

   가을 모기가 물어도 그냥 웃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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