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독감 - 최은묵

공산(空山) 2021. 4. 8. 10:25

   독감

   최은묵 (1967~ )

 


   길 건너편은 타국이다

 

   빨간 벽돌을 빻아 소꿉놀이하던 아이들이
   국경 너머를 기웃거린다
   가난은 엄지와 검지만큼 가까워,
   배를 채우지 않아도 저녁은 금방 갔다
   우물은 퍼도 퍼도 줄지 않았다
   아이들은 낡은 책을 돌려 읽거나
   타이어가 닳은 자전거처럼 놀았다
   엄마보다 아줌마를 보는 날이 더 많았고
   쌀집 아저씨는 쌀을 팔아 먹을 걸 샀다
   달력 뒷면에 태양을 그려도
   방은 환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두운 방에서 공과금을 내듯
   한 달씩 컸다

 

   누군가 국경을 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며칠째 기척 없는 옆집에 경찰이 다녀갔다

 

   둥근 딱지에 찍힌 별이 가짜란 걸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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