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시간의 신경 - 김대호

공산(空山) 2021. 1. 8. 19:37

   시간의 신경

   김대호

 

 

   먼지가 앉은 창틀이 있다

   손으로 쓸어보지 않으면

   그냥 창틀로만 보이는 창틀이다

   창틀의 친화력이 먼지들을 불러온 것일까

   저 낱낱의 먼지가

   먼지라는 육체를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목구비가 없는 먼지

   내장이 없는 먼지

   그러나 어느새 창틀의 신경이 된 먼지

   저 창틀의 먼지는 이제 흩날리지 않는다

   저 먼지의 연대는 폐가의 역사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무엇이 되었다

   사랑이란 이런 절차를 거치기도 하는구나

   유리창에 금이 가는 것도 먼지의 압력 때문이구나

   나는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먼지가 창틀로 오는 여정을 지켜본다

   내 두 눈에서 나온 먼지가 꽃잎처럼 흩날리다가

   창틀에 내려앉는다

   시각은 금방 물질로 변했다

   시간이 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시각은 창틀에 사랑스럽게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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