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근 엽채 일급
김연대
이순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아우가
버려두었던 옛집을 털고 중수하는데
육십 년 전 백부님이 쓰신 부조기가 나왔다.
이태 간격으로
조부님과 조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추강댁 죽 한 동이
지례 큰집 양동댁 보리 한 말
자암댁 무 열 개
포현댁 간장 한 그릇
손달댁 홍시 여섯 개
대강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었는데
거동댁 大根葉菜一級이 나왔다
대근엽채일급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만 핑 눈물이 났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내 아버지, 할아버지와
이웃들 모두의 처절한 삶의 흔적
그건 거동댁에서
무 시래기 한 타래를 보내왔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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