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빈집​ - 심재휘

공산(空山) 2021. 1. 5. 20:36

   빈집

​   심재휘

 

 

   담배를 문 노인이 구부정한 밀밭 가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어서 너무 너른 들판이었다

   밀은 갓 자라 그저 푸릇하기만 하고

   나무들은 가보지 못한 땅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지마다 새집을 너무 매달고 있었다

   새집들은 둥근데 성글어서 모두 속이 훤했다

   새들이 떠난 지 몇 계절이 지난 빈집들이었다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검불인 듯

   길어진 그림자를 등지고 우듬지만 겨우 환해서

   헐거운 자세가 높고 깊었다

   그곳에 나무만 혼자 사는 빈집이

   여러 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