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심재휘
담배를 문 노인이 구부정한 밀밭 가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어서 너무 너른 들판이었다
밀은 갓 자라 그저 푸릇하기만 하고
나무들은 가보지 못한 땅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지마다 새집을 너무 매달고 있었다
새집들은 둥근데 성글어서 모두 속이 훤했다
새들이 떠난 지 몇 계절이 지난 빈집들이었다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검불인 듯
길어진 그림자를 등지고 우듬지만 겨우 환해서
헐거운 자세가 높고 깊었다
그곳에 나무만 혼자 사는 빈집이
여러 채 있었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에 빗자루 기대며 - 신현정 (0) | 2021.01.12 |
---|---|
시간의 신경 - 김대호 (0) | 2021.01.08 |
대근 엽채 일급 - 김연대 (0) | 2021.01.02 |
아지랑이 만지장서 - 김연대 (0) | 2021.01.02 |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 김선굉 (0) | 2020.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