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시월이어서

공산(空山) 2017. 9. 23. 17:40

   시월이어서

   전동균

 

    

   여섯시가 되면 허공의 귀를 펄럭이며 붉은 코끼리떼가 독신자 숙소 앞을 지나가곤 한다 무덤을 찾아가듯 느릿느릿

    

   혼자 밥을 먹는 저녁의 눈길이 스칠 때마다 누가 같이 먹는 것처럼 의자는 삐걱대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 서서 견뎌온 자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신호인 것을

    

   그동안 나는 사라진 것들의 말에 매달려 살아왔구나, 나뭇가지들이 땅으로 휘어지는 밤의 귀퉁이를 돌아 환한 빛에 싸인 검은 기차가 달려오고 달려가고

    

   오신들,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벼랑길을 건너 당신이 오신들, 없어라 차디찬 물 한그릇밖에는, 내가 있는 곳은 늘 나의 바깥을 떠도는 객지여서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되어서, 환속하는 바람의 이마에도 살얼음 서걱거려서,

 

 

   「우리처럼 낯선」창비,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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