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먼 나무에게로

공산(空山) 2017. 9. 16. 22:56

   먼 나무에게로

   전동균

 

 

   그곳으로 가시지요 열매를 매단 채 새 이파리 피운 신성한 나무에게로

 

   좀 멀긴 합니다 신발을 벗고 몰려오는 구름들과

   물결치는 돌들의 골짜기를 지나야 하죠

   땅속으로 꺼진 무덤들

   시장 난전의 손바닥 같은

   바람의 비문(碑文)을 읽어야 해요

 

   일생토록 쌀 닷말 지고 가는 사람, 우리는

   아침에 얼어붙은 강을 건넜으나

   밤에도 강가에서 노숙하는 사람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요 그곳엔

   다람쥐가 뱀을 잡아먹고 사람이 사람을 불태울지 몰라요

   하늘로 하늘로 이파리들 펄럭일 때

   누군가는 하염없이 오체투지 하는지도

 

   쉿! 아무 말 하지 마세요

   모르는 척 기다려야 해요

   그이들도 가슴에 통곡을 넣고 왔을 테니까

 

   아흔아홉 설산 너머 무지개공원의 늘 푸른 나무

   공원보신탕 입구 개사슬 묶인

   으렁으렁 먼나무

 

 

   ㅡ「우리처럼 낯선」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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