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중년

공산(空山) 2017. 9. 23. 17:36

   중년

   전동균

 

 

   앉아서 오줌 누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당신,

   날개를 어디다 감췄어?

   아내에게 너스레도 떨게 되었다 끓는 물속에서

   악착같이 팔다리를 휘젓는 낙지나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불판 위 삼겹살을 보면 괜히

   내 살을 쓰다듬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독작(獨酌)을 즐기게 되었고

   신록이 올 때면 이유 없이 아파서

   이 별은 왜 나를 불렀을까, 한밤의 아파트 옥상을 서성대곤 하는데, 거기서

   804호 아저씨를 만나도 서로 모른 척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키 작은 나무는 잎사귀가 넓다는 것을

   모과가 떨어지면 순간

   마당이 거룩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청소부 아줌마에게 먼저 깍듯이 인사를 하게 됐지만

   강아지에게 신발 신긴 것들, ‘우리가 남이가하는 것들,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것들 보면 욕이 튀어나오고

   아무 데서나 님은 먼 곳에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이런 것도 시라고 쓰게 되었다

 

 

   ㅡ「우리처럼 낯선」창비, 2014. 6.

'전동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납작보리  (0) 2017.09.23
시월이어서  (0) 2017.09.23
먼 나무에게로  (0) 2017.09.16
삼천사에 가면  (0) 2017.09.16
땡볕 속  (0) 2017.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