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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백록담

한참동안 구름 걷히기를 기다린 끝에 눈앞에 드러난 백록담은, 그저께 밤부터 어제 아침까지 한라산에 200mm나 내린 비 덕분에 물이 많이 차 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저 아래쪽 산언저리와 바닷가엔 서너 번 다녀간 적은 있으나 여기까지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뒤늦게 소원 하나는 이룬 셈이다. 때마침 밤새 내리던 비도 아침에 그쳐 쾌적한 날씨다. 성판악에서 7시 반에 출발하여 5시간을 걸어 올라왔다. 올라오는 동안 정지용 시인의 오래된 시 을 생각했다. "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웃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

바위가 있는 나의 텃밭

부모님 평생의 땀이 배어있고 내가 또 가꾸어가야 할 터전인 집앞 텃밭 입구엔 간판처럼 또는 기념비처럼 우뚝 선 바위가 하나 있다. 내가 십 년쯤 전에 축대를 쌓고 경지정리를 하면서 중장비를 동원하여 이 바위를 세웠는데, 그 때 옆에서 지켜보며 이 아들을 대견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때 심었던, 이 바위곁의 땅거죽을 잔디처럼 덮으며 번져가는 좀누운향나무는 이제 많이 자랐다. 아버지가 이십 년 전쯤에 심으신 단감나무도 바위와 썩 잘 어울린다.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내가 가끔 나팔을 불 때 무대로 쓰거나 여럿이 앉아 새참이라도 먹으며 쉴 수 있는, 주목과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노간주나무, 갈매나무 등으로 둘러쌓인 멋진 반석도 둘 있다. 또 여차하면 '이랴!'하고 걸터앉아, 일..

텃밭 일기 201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