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92

쏙독새 - 전기철

쏙독새 전기철 쏙독, 핀다 숲의 잎술들, 지미 핸드릭스의 작은 날갯짓, 잠들지 못한 편지의 방언들 너는 티브이와 사랑에 빠졌다 티브이 이름은 민희다 민희는 나 몰래 이웃집 영화 감독과 할근거렸다 너는 빌어먹을이란 단어로 교회를 세우고 젠장에 촛불을 쓰러뜨렸다 커피는 습이고 강물은 신음소리다 새가 되고픈 물고기가 있다 희뜩, 환유처럼 검은 망토를 입은 시계바늘이 꺽꺽 운다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한 외판원이 길 건너 여인숙에서 죽었다 한 주의 중간에 갇힌 너의 얼굴이 진다 쏙쏙, 촉촉촉, 핀다 ㅡ「시와소금」2017. 가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몸 전체가 낙엽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고, 낮에는 나뭇가지에 가슴을 붙이고 나뭇가지와 수평으로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쏙독새, 어두워지면 곤충을 찾아 날아다니는 야행성...

해설시 2017.10.05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외 3편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외 3편 안희연(安姬燕) 나는 핏기가 남아 있는 도마와 반대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오늘은 발목이 부러진 새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들었지요 벌겋고 물컹한 얼굴들 뻐끔거리는 이 어린 것들을 좀 보세요 은밀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나의 화분은 치사량의 그늘을 머금고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창밖엔 지겹도록 눈이 옵니다 나는 벽난로 속에 마른 장작을 넣다 말고 새하얀 몰락에 대해 생각해요 호수, 발자국, 목소리…… 지붕 없는 것들은 모조리 파묻혔는데 장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담장이 필요한 걸까요 초대하지 않은 편지만이 문을 두드려요 빈 액자를 걸어두고 기다려보는 거예요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물고기의 비늘을 긁어 담아놓은 유리병 속에 새벽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별들은 밤새도..

해설시 2017.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