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겨울 나그네

공산(空山) 2016. 9. 26. 23:44

   겨울 나그네

   우대식

 

 

   너구리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논길을 걸어가다,

   멈칫 나를 보고 선다

   내가 걷는 만큼 그도 걷는다

   그 평행의 보폭 가운데 외로운 영혼의 고단한 투신이

   고여있다.

   어디론가 투신하려는 절대의 흔들림

   해거름에 그는 일생일대의 큰 싸움을 시작하는 중이다

   시골 개들은 이빨을 세우며 무리진다

   넘어서지 말아야할 어떠한 경계가 있음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직감이다

   그가 털을 세운다

   걸음을 멈추고 적들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나도 안다

   지구의 한 켠을 걸어가는 겨울 나그네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나도 안다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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