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시(詩)

공산(空山) 2018. 12. 10. 20:18

   시(詩)

   우대식

 

 

   시는 나를 일찍 떠난 어머니였으며

   왜소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였으며

   쓸쓸한 내 성기를 쓰다듬어주던 늙은 창녀였으며

   머리에 흐르던 고름을 짜주던 시골 보건소 선생이었다

   시는

   마당가에 날리는 재[灰]였으며

   길을 잃고 강물 따라 흐르는 밀짚모자였다

   폭풍전야, 풀을 뜯는 개였으며

   탱자나무 가시 아래 모인 새이기도 하였다

   늘 피가 모자라 어지러워하던

   한 소년이 주먹을 힘껏 모았다 펴면

   가늘게 떨리는 정맥

   그곳에 시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설산국경중앙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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