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북어 - 최승호

공산(空山) 2015. 11. 16. 15:51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대설주의보』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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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호 –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그로테스크』,『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고비』,『아메바』등이 있고, 그림책으로는『누가 웃었니?』,『이상한 집』,『하마의 가나다』,『수수께끼 ㄱㄴㄷ』,『구멍』,『내 껍질 돌려줘!』가 있다. 동시집으로는『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1(모음 편), 2(동물 편), 3(자음 편), 4(비유 편), 5(리듬 편)』,『펭귄』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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