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노란 얼음꽃

공산(空山) 2015. 12. 23. 21:42

   노란 얼음꽃

                         -개마고원에서 온친구에게8

   신대철 

 

 

   폭풍설에 쫓겨 기어들어간 곳, 수퍼마켓은 바겐 세일이 한창이었습니다. 사발 2달러 75센트 가죽 장갑 9달러 50센트. 첫눈에 든 장갑이 불량품, 메이드 인 코리아였습니다. 그냥 가려다 기념으로 장갑 하나씩 사 들고 우린 그냥 즐거웠습니다. 어리둥절한 점원에게 우리도 같은 제품이라고 농을 걸며 마음놓고 함께 웃었습니다. 물건을 바꾸러 온 육이오 참전 용사도 덩달아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용사가 웃고 서 있던 자리에 이상한 침묵이 돌았습니다. 서울과 평양에서 온 침묵을 사이에 두고 우린 말없이 매장을 겉돌았습니다.  

 

   침묵을 무엇으로 바꾸고 싶었던가요,

   토산품 코너에 기대어

   순록 가죽으로 만든 탈을 쓰고

   이누피아트 같으냐 몽골리안 같으냐고 묻던 당신,

   그게 바로 당신 얼굴이라고 하자

   탈을 벗어 들고

   진짜 탈을 보라고 맨얼굴을 들이밀며

   웃음을 뒤집어쓰던 당신,

 

   수퍼마켓을 나와 우린 쓸데없이 얼음 바닥을 차며 버스 두 대를 놓치며 머뭇거렸습니다. 극장도 술집도 없고, 걷는 사람조차 없는 얼음 사막, 뒤집히고 뒤집히는 눈, 눈 속에 폈다 묻히는 노란 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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