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금강의 개마고원에서

공산(空山) 2015. 12. 23. 21:50

   금강의 개마고원에서

                         --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2

   신대철|

 

 

   허영호와 뵈르게*가 극점을 향해 가고 있을 동안

   산정에 떠오른 하루살이 영혼들을 삼림 한계선에 날리고

   북극해가 몸부림친 대로 얼어붙은 빙원에서

   우리는 새도 나무도 없는,

   길 없는 거리로 들어섰습니다.

 

   -33, -23

   모든 시간은 태초로 되돌아가고

   툰드라엔 광물질만 남는 고독, 휘몰아치는 폭풍설

 

   우리는 동네 전체를 휘말아 핀 소용돌이 눈꽃 속에서

   손목이 마비되는 줄도 모르고 가족 사진을 바꿔보았습니다.

   사진 몇 장을 나란히 맞추면 풍경 가득히 넘치던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당신의 아이는 강가에서 내 아이는 고원에서

   마주보고 웃고 웃었던가요.

   온 곳도 갈 곳도 잊고

   우리는 금강의 개마고원에서 개마고원의 금강으로 오르내리다

   농경 사회가 열리는 고릉 지대를 지나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데까지 걸었습니다.

   눈 속에 쓰러진 십자가를 세우며 나를, 당신을,

   우리를 넘어, 쿵쿵, 쿵쿵쿵, 뜨거운 핏줄 속으로.

 

 

   * 뵈르게 오슬란 : 노르웨이 탐험가. 추가 지원과 스키 이외 다른 운송수단 도움 없이 그는 199038일 오후 130분 게이르 란뷔, 에를링 카게 등과 함께 캐나다 최북단 워드헌트 섬 빙원에서 출발하여 58일째 되는 54일 오후 520분 마침내 북극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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