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뼈아픈 후회 - 황지우

공산(空山) 2024. 8. 13. 11:54

   뼈아픈 후회

   황지우(1952~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알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