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전동균
빈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사랑하였다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을 사랑하였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를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세상에서 버려져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와 같아
내게로 오는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담을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후회를
내 눈동자를 스쳐간 짧은 빛을 사랑하였다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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