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빗소리 - 전동균

공산(功山) 2024. 8. 28. 22:22

   빗소리

   전동균

 

 

   빈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사랑하였다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을 사랑하였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를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세상에서 버려져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와 같아

   내게로 오는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담을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후회를

   내 눈동자를 스쳐간 짧은 빛을 사랑하였다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 2024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라에 산다 - 안현미  (0) 2024.09.01
관심 - 이영광  (1) 2024.08.30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0) 2024.08.16
뼈아픈 후회 - 황지우  (0) 2024.08.13
둥둥 걷어붙이고 - 송진권  (0)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