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공산(空山) 2024. 8. 16. 20:31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어두워진다는 것』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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