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바우*
김상동
이쪽은 폭포 가리재 큰골 야시골 호지난골
저쪽은 보랑골 너리청석 오도재 너머 한밤**
아버지와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길 옆에
큰 바위 하나 두꺼비처럼 앉아 있지
솔숲에 국수나무 싸리나무 머루덩굴에 싸여 있지
저 바우에게 고맙다고 인사해라
저 바우에게 부탁해서 너를 낳았단다
지게 받쳐 두고 풀숲을 헤치고 다가가 보면 바위엔 한문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 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열여덟에 시집 온 어머니 서른이 되도록 태기가 없어 이 신령스럽고 위엄 있는 바위 앞에 촛불 밝히고 빌었다네 날마다 빌고 또 빌었다네 마침내 서른하나에 소원을 이루셨네
어머니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홍수가 계곡을 온통 휩쓸고 지나갈 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날 때도
꿈쩍하지 않던 저 육중한 바위 앞에
평생 걱정이시던 이 아들 덩그마니 맡겨 두고
어느 먼 별에 가 계시나요?
바위야, 바위야 내 소원도 한번 들어 다오
그 옛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 주었듯이
다시 한 번 이 세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다오
꿈속에서만 말고 동화처럼 신화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글쓴바우야
*글쓴바우 ⁚ 팔공산 수태골에 있는 큰 바위.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표석. 지금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한밤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大栗里의 옛 이름.
'내가 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평 「국화」 - 《대구문학》 193호(2024. 5-6월호) (0) | 2024.05.24 |
---|---|
김상동 「엄마 이야기」 월평 - 대구문학 175호(2022년 4월호) (0) | 2022.04.14 |
용선대龍船臺 (0) | 2021.07.14 |
지금은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0) | 2021.07.07 |
도덕산명동道德山鳴動 다람쥐 이필二匹 (0) | 2021.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