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

글쓴바우

공산(空山) 2021. 11. 26. 23:24
2021. 11. 6. 촬영.

 

   글쓴바우*

   김상동

 

 

   이쪽은 폭포 가리재 큰골 야시골 호지난골

   저쪽은 보랑골 너리청석 오도재 너머 한밤**

   아버지와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길 옆에

   큰 바위 하나 두꺼비처럼 앉아 있지

   솔숲에 국수나무 싸리나무 머루덩굴에 싸여 있지 

 

   저 바우에게 고맙다고 인사해라

   저 바우에게 부탁해서 너를 낳았단다 

 

   지게 받쳐 두고 풀숲을 헤치고 다가가 보면 바위엔 한문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 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 열여덟에 시집 온 어머니 서른이 되도록 태기가 없어 이 신령스럽고 위엄 있는 바위 앞에 촛불 밝히고 빌었다네 날마다 빌고 또 빌었다네 마침내 서른하나에 소원을 이루셨네

 

   어머니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홍수가 계곡을 온통 휩쓸고 지나갈 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날 때도 

   꿈쩍하지 않던 저 육중한 바위 앞에

   평생 걱정이시던 이 아들 덩그마니 맡겨 두고

   어느 먼 별에 가 계시나요?

 

   바위야, 바위야 내 소원도 한번 들어 다오

   그 옛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 주었듯이

   다시 한 번 이 세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다오 

   꿈속에서만 말고 동화처럼 신화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글쓴바우야  

 

 

   *글쓴바우  팔공산 수태골에 있는 큰 바위. 수릉봉산계綏陵封山界 표석. 지금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한밤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大栗里의 옛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