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라원이의 첫돌

공산(空山) 2024. 2. 22. 12:17

어제는 우리 집안의 천사 라원이의 첫돌이었다. 가족들만 참석한 조촐한 돌잔치는 하루를 앞당긴 그저께 저녁에 서울의 아차산 자락에 있는 워커힐 호텔 별관인 '명월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라원이, 그의 엄마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인 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큰아빠, 이모와 이모부, 이렇게 열 분이었다.
 
그저께 아침에 할머니와 나는 동대구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울산에서 같은 열차를 타고 오는 큰아빠인 김교수를 만나 함께 서울역에 내렸다. 안식년을 맞아 서울에 작은 오피스텔을 마련했다는 김교수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광진구 자양동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그 오피스텔을 구경하며 잠시 쉰 후에, 택시를 타고 명월관으로 갔다.
 
한옥 건물인 명월관에서 라원이는 부모와 함께 미리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복으로 갈아입을 때 많이 울었다고 했지만, 아빠에게 안긴 채로 그는 손을 흔들며 낯선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아빠를 맞이해 주었다. 할머니와 내가 반갑다고 손을 잡아도 낯가림하지는 않았다. 그가 태어난 지 몇 주 후에 그의 엄마가 산후조리원을 퇴원해 집으로 왔을 때 만난 이래 이제 두 번째 만남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식장 안에서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그의 아빠인 김원장의 인사말에 이어서 생일축하 노래, 돌잡이 순서로 진행되었다. 돌잡이상에는 실, 붓, 책, 바늘쌈, 판사봉, 청진기, 엽전 등등이 놓여 있었는데, 라원이는 무척 신중했다. 한참 바라보기만 하다가 결국 청진기를 잡았지만, 이 할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하객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을 것이다. '무얼 잡든지 건강히만 자라거라'.

돌잡이가 끝난 후 선물 전달 순서가 있었다. 그 작고 예쁜 손가락과 손목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와 이모부가 준비해온 팔찌와 반지를 끼워주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날을 위해 오래전에 준비해 두었던 선물을 짧은 축하편지와 함께 전달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큰아빠는 금일봉을 내놓았다.

마지막 순서로 가족사진을 찍은 후, 한우 갈비구이 등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그리고 인천으로 돌아가시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네를 배웅한 후 우리는 남양주의 라원이네로 함께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라원이는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 등에 잠시 업혀 있다가 내게 안겨 우유를 먹었다. 아직 제 힘으로 걸음마는 하지 못했지만 앉아서 장난감을 만지며 잘 놀았는데, 그 모습이 대구로 돌아온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주 못 봐서 낯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낯가림하지 않은 그를 생각하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