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새로운 카메라와 헌 책상

공산(空山) 2024. 4. 25. 22:58

어제는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울산에 다녀왔다. 김교수의 아파트에 들러서 먼저 콤펙트 디지털 카메라 두 대를 전달받았다. 카메라는 Canon의 G7X-markⅢ와 Panasonic의 LUMIX zs200d이다. 사진 마니아인 김교수로부터 카메라에 대한 설명을 잠시 들은 후 창밖 풍경을 줌인하여 시험 촬영을 해보았다. 두 대 모두 선명하게 사진이 잘 찍혔지만, 아직은 복잡한 촬영 모드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앞으로 사용해 보면서 어느 것이 나의 취향과 용도에 더 맞는지 검토해 볼 생각이다. 그가 비교하며 설명해준 두 디카의 스펙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G7X-markⅢ : 1인치 센서(CMOS), 20.1메가픽셀, 24~100mm렌즈(9군11매), f1.8~2.8 조리개, 틸트형 모니터, 304g, 중고 구입(80만원)
LUMIX zs200d : 1인치 센서(MOS), 20.1메가픽셀, 24~360mm(라이카, 11군13매), f3.3~6.4, 뷰파인더 있음, 340g, 새상품(767달러)

여기서 내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카메라들을 한번 되돌아본다. 오래 전, 처음 가졌던 카메라는 '니콘 FM2'라는 기계식 카메라였다. 조리개, 셔터속도, 초점을 모두 수동으로 조절해야 했다. 50mm 표준렌즈 외에 추가로 구입한 24mm 광각렌즈, 135mm 망원렌즈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에도 모터 드라이브Motor Drive가 장착되어 자동촛점AF 기능이 있는 카메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카메라의 원리와 사진을 배우는 데 유리할 뿐 아니라 튼튼하기도 한 그 카메라를 구입했었다. 물론 35mm 네가티브 필름을 장착하는 카메라였다. 거기엔 나의 보모님과 어린 두 아들과 아내와 나 자신, 그리고 친구들의 젊은 시절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겼었다. 이젠 신기하기까지 한 그 아날로그 기계식 SLR 카메라는 김교수가 골동품으로 보관하고 있다.
 
그 후,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도래하고 필름 현상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구입했던 카메라는 '소니 DSC-T100'이라는 카메라였다. 콤팩트 디카인 만큼 FM2에 비하면 부피가 훨씬 작고 가벼웠으며 모든 것이 자동이어서 사진 찍기가 편했다. 직장에서 2005년 2월에 신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을 때, 여행 준비물로 구입한 것이었다. 그 후 2007년도에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가족이 이 카메라와 함께 동부와 서부를 여행하였고, 2012년 5월의 중국 황산 여행, 2013년 5월의 미국 일리노이와 캐나다 동부 여행, 2013년 9월의 타이완 여행, 2014년 4월의 중국 서안 배낭여행을 할 때까지 이 카메라와 함께 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화소수가 더 많아진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2016년 1월에 새로이 시작한 이 블로그에 그동안 올려진 사진들은 대부분 폰카로 찍은 것들이다.
 
그런데, 렌즈와 센서가 너무 작은 폰카메라는 아무래도 화질이나 촬영 기법에 한계가 있었고, 특히 광학 줌optical zoom 기능이 미미하여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크고 무거워서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도 나는 경험하였다. 나의 이런 이력을 잘 알고 있는 김교수는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카메라를 내게 마련해 주려고 마음먹었던가 보다. 이 디카를 나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늘 휴대하고 다니며 저 아름다운 자연과 '풍진세상'에서의 삶을 기록해 볼 것이다.
 
우리는 긴 대숲이 있는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가서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거기서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걷기를 하였다. 나는 이다음에 태화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자전거를 한번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콩나물이 부드러워서 맛이 더 있는 아구탕으로 점심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리고 김교수가 쓰던 원목 책상 두 개를 차에 무겁게 싣고 대구로 돌아왔다. 8년 전인 2016년 7월에 그가 캘리포니아 프리몬트Fremont에서 텍사스 러벅Lubbock으로 이사를 갔을 때 마트에서 산 목재와 철재 다리로 그와 내가 함께 만들었던 것인데, 7년 전에 한국으로 올 때 버리지 않고 화물로 부쳤던 그 무거운 책상이다. 대구에 가지고 와도 딱히 놓을 만한 곳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추억이 서려 있는 것이니까.
 

 
산가에 갖다 놓은 원목 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