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파군재를 넘어 동화천을 따라 자전거를 탔었는데, 오늘도 그쪽이 좋아서 같은 길을 탔다. 파군재는 공산터널 옛길의 '내동재'보다는 높지 않지만 우리 동네에선 가장 큰 고개라서 댄싱*으로 올라가면 제법 숨이 찬다. 그건 그만큼 운동이 된다는 의미다. 이 고개를 넘고 나면 동화천을 따라 연경까지 가는 자전거길은 닦은 지 몇 년 안 되는 평탄한 길이다. 연경의 '동화1교'를 건너기 직전 다릿목에서 좌측 낮은길로 내려가 동화천 좌안(左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외곽순환고속도로' 굴다리와 톨게이트 옆을 지나고, 다시 동화천을 따라 내려가면 동변동에 이른다. 거기서 건너편의 동화천 우안(右岸) 쪽은 서변동이다. 여기서는 경부고속도로가 금호강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횡단하고 있는데, 바로 그 다리 밑에서 동화천이 금호강에 합류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가 본 동화천 하류 양안(兩岸)에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산책로 옆에는 각종 수목들과 장미들이 심겨 있었는데, 아직도 갖가지 빛깔의 장미가 피어 있었다. 늦가을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억새밭도 있었다. 내 키보다 훨씬 큰 당종려나무와 바나나나무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몇 달 전 신천변에서 보았던 당종려나무를 여기서도 만나게 되어 반가웠지만, 놀라운 것은 바나나나무에 바나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바나나는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속이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마당에서 바나나를 키우다가 지금은 키가 작고 잎이 빳빳한 몽키바나나를 키우고 있는 나는 이곳 바나나의 겨울나기가 궁금했다. 마침 산책 나온 아주머니 두 분이 바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바나나나무들에게 지난 겨울에는 비닐하우스를 지어 주었을까요?"
"아뇨. 지지난 겨울엔 비닐하우스를 짓고 난방까지 했지만, 지난 겨울에는 비닐하우스를 짓지 않았어요. 봄에 다른 곳에서 자란 것을 캐어 와서 새로 심더라구요."
"아, 그랬었군요! 아무튼 여기서 바나나를 구경할 수 있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네요."
"네. 하지만 에너지 낭비는 많을 거예요."
"그렇겠지요. 이 추운 곳에서 저렇게 열매가 열리도록 키우자면…"
아주머니들과 내가 잠시 나눈 대화였다. 나는 동변동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 '화담마을'까지 가 보았다. 동변동에서 금호강 우안을 따라 화담마을로 가는 산책로 구간엔 데크(deck)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담마을은 민가가 몇 안 되는 외딴 곳인데, 몇 년 전에 아내와 함께 봉무동에서 '가람봉' 등산을 하며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화담마을에서는 봉무동 아파트 단지가 빤히 건너다보이지만 금호강 우안의 산과 절벽에 막혀 산책로와 자동차길은 여기서 끊어지고 만다. 중국에 가면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관광지에 설치되고 있는 잔도(棧道)를 이곳 금호강 우안의 절벽에다 설치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불과 0.5km 남짓만 잔도나 데크를 설치하면 이 마을과 봉무동 뒤쪽의 '위남마을'이 연결될 수 있을 텐데. 북구와 동구가 절경의 산책로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사진을 찍으며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서너 시간이 흘러서 돌아오는 길엔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지는 해를 가장 늦은 시각까지 배웅하며 서 있던 팔공산이 멀리서 나의 귀갓길을 넌지시 지켜보고 있었다.
* 댄싱(dancing) - 자전거의 안장에서 일어나 자전거를 좌우로 흔들며 페달링을 하는 기술. 속도를 높이거나 오르막을 오를 때 사용한다.
-------------------------------------------
'텃밭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 종주(3) - 능성재에서 초례봉까지 (0) | 2024.01.15 |
---|---|
별천지에 다녀오다 (0) | 2023.12.07 |
고구마 캐기 (0) | 2023.10.13 |
신천을 타다 (0) | 2023.09.10 |
다시 자전거를 타고 (0) | 2023.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