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나무 믹담 - 김상환

공산(空山) 2023. 10. 4. 11:49

   나무 믹담*

   ―부인사

   김상환
 
 
   겨울 산사를 찾았다
   부인은 없고
   부인과 함께 바라본 느티가 묻는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럴 땐 나를 봐 무를 봐,
   라고 곁에 선 왕벚이 거든다
   나무에 새겨진 칼날의 허
   공에는 마침내의 도가 있다
   한쪽 귀가 깨진 서탑
   풍경과 바람과 석등의 비밀이
   부인에 있다
   대웅전 지붕 끝 치미가
   하늘을 오르다 말고
   산신각 앞에 내려와 앉는다
   흠도 티도 없는 절집 아침
   마당과 마음을 돌고 도는 나는
   포도나무 잎 진 자리
   떨켜를 생각한다
   저잣거리로 내려가는 길
   눈의 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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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어(מכתם, Michtam). 조각에 새겨 놓은 금언이나 지혜의 말씀.

 
 
   ―『왜왜』서정시학, 2023. 8.
 
 

   ■ 2023. 9. 25. 시지 '페이스포포' 카페에서 시집 출판을 축하하며 몇몇 시인들이 저자와 함께 차를 마셨다. 투병 중인 한 시인을 위로하며 경산에서 점심으로 추어탕을 함께 먹은 뒤에 옮긴, 조촐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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