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남택상-Pardonne Moi(용서하세요)

공산(空山) 2023. 6. 4. 21:56

어떤 분이 카톡을 통해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동영상은 배경 사진에다 자막이 올라가도록 한 것이었는데, SNS에 떠돌아다니는 그런 부류의 통속적인 내용이어서 자막을 두어 줄 읽다가 핸드폰을 꺼버렸다. 끄고 나니까 그 영상에 흐르다 내 귀에 여운으로 남은 배경음악이 생각나서 다시 핸드폰을 켜고 그 음악을 들어보았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선율은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이 노래의 제목을 알 수는 없을까. 이 음악을 알고 있거나 제목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지인에게 나는 그 영상을 보냈다. ‘자막의 내용은 제 관심 밖입니다만 배경음악의 제목을 좀 알고 싶군요.’ 늦은 저녁 시간이기 때문인지 답이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잠자리에 누워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쉽게 ‘듣고 있는 노래 제목 검색 방법’을 찾아냈다.
 
「남택상-Pardonne Moi(용서하세요)」라는 연주곡이었다. 이 연주곡의 원곡을 다시 찾아보니 나나 무스꾸리가 부른 것이었다. 나나 무스꾸리라면 ‘사랑의 기쁨’이나 ‘하얀 손수건’을 부른 그리스 출신의 여가수가 아니던가. 그 노래들은, 원가수보다 오히려 목소리와 화음이 일품인 은희, 송창식, 트윈폴리오가 우리 정서에 맞게 번안하여 부른 것을 나는 더 좋아하지만,「Pardonne Moi(용서하세요)」라는 노래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나는 부드러운 마음과 빈 손으로 떠납니다
   나는 당신이 더이상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떠납니다
   나는 기도하는 어린아이처럼
   시선을 떨군 속죄자처럼 떠납니다
 
   용서해 주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당신을 기다릴 때 너무나 추웠어요
   (하략)
 
그런데 이 노래를 그렇게 아름답게 연주한 남택상이란 분은 또 누구일까? 나는 다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남택상이라고 표시된 연주곡은 많았지만, 그분의 프로필 사진이나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한 토막도 찾을 수 없었다. 책 이름에 『베스트 팝 피아노 - 남택상 피아노 편곡집』이나 음반 이름에 『Popular Piano Vol. 2(Orchestra and Piano)』,「강가의 노을(Twilight at the River Side)」이란 악보에 ‘남택상 작곡’이라고 쓰여 있는 것 등등이 눈에 띌 뿐이었다. 그래서 답답해하던 중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비교적 자세한 소개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뉴에이지 음악의 거장이며, 크로스 오버 뮤직의 새로운 연주를 정착시킨 선구자. 재프랑스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다. 1980년대 초에 폴 모리아와 제임스 라스트 등의 악단들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솔로 앨범을 내면서 이 분야를 개척한 아티스트이다. 1981년 데뷔 이후 Popular Piano Vol 1 ~ 3 Love Player Vol.1~10 등을 남겼다.
 
한국 정서와 감성을 잘 표현하여, 국내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으며, 아직까지도 애호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연주자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가인 동시에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이다. (출처: maniadb.com)
 
이제 다시 「남택상-Pardonne Moi(용서하세요)」로 돌아가보자. 나는 처음에 이 연주곡을 들었을 때 무언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취미로 트럼펫을 혼자서 불어보는 것 밖에는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음악 용어로는 그런 연주법을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피아노의 박자가 부분적으로 약간 처지는 듯하다가도 이내 따라가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처음에는 피아노가 무겁고도 진지한 기분에 젖어 있더니 점점 밤하늘의 별이 된 듯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 별이 은하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경쾌히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데서 오는 슬픔인지, 그 슬픔을 씻어버리는 의미인지, 도중에는 한 차례 소나기도 쏟아졌다. 그 별은 흘러가는 중에도 다음과 같이 애절하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이 사랑을 용서해 주세요. 나는 이제 당신을 떠나지만 우리가 이 은하에 몸담아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당신은 한때는 나의 연인이었거나 나의 부모, 나의 자식, 혹은 나의 가족, 나의 친구였죠. 그런데 그 관계는,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은하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건 함께 흘러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흘러갈 테니까. 그렇지 않은가요? 대답해 보세요. 조급하고 속 좁았던 지난날의 나를 용서하세요, 라고.

 
 

(영상 출처 : 석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