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직 병원에 있고, 골절에 대한 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째인 어제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서 중간검사를 했는데, 순조롭게 접합이 되고 있다는 소견이라고 한다. 이젠 링거와 주사도 맞지 않는데, 통증은 아직도 좀 있다고 아내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잠을 못 자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서 밤에는 귀마개까지 사용해보지만 큰 효과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일주일만 더 지나면 퇴원하게 될 것이고, 퇴원하면 생활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오늘 텃밭에서 상추잎을 따서 내일 아침에 갖다줄까, 물었더니 아내는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싱싱한 야채도 먹어야 뼈가 잘 붙지, 나의 말에 아내는 다시 상추를 갖다 달라고 한다.
나 혼자서 하자니 요즘 텃밭일이 밀리고 있다. 농약방에서 고추 모종 50포기와 수박, 참외, 가지, 브로콜리, 양배추 몇 포기씩을 아내와 함께 산 것은 자전거 사고가 나기 전이었다. 모종판매가 끝난다고 해서 미리 샀지만, 아침기온이 10°C 이하로 내려간다는 예보를 보며 사나흘을 기다려 지난주에 심었었다. 하지만 모종을 심은 후 5월 8일의 아침 최저기온이 다시 많이 떨어진다는 기상청 예보를 보고 전날에 부랴부랴 시누대를 베어 구부려 이랑에 줄지어 꽂고 구멍이 많이 뚫린 투명비닐을 씌웠었다. 덕분에 모종이 냉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랫마을의 몇몇 농가들은 냉해를 입어 축 늘어진 고추 모종을 다 뽑아내고 새로 사다 심었다고 한다. 참고로, 기상청 관측자료를 보면 5월 8일의 최저기온이 대구 시내 5.2°C, 팔공산 3.1°C, 김천 2.6°C, 청도 4.2°C였다. 고온성 작물인 고추는 생육 최저 한계온도가 10°C 정도라고 한다.
오늘은 옥수수, 호박, 고추, 참외, 수박, 가지, 오이에 씌웠던 비닐을 모두 걷어내었다. 그리고 외대깨를 두 이랑에 파종하고, 자색고구마 모종을 한 이랑(120포기) 심었다. 참깨씨는 지난주 아내가 다치기 전에 함께 김천시 감문면에 있는 친구(성구)의 텃밭에 구경갔을 적에 얻어온 것인데, 어린 참깨에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거세미나방 애벌레 방제防除를 위해 토양살충제 입제와 섞어서 심었다. 자색고구마 모종은 아파트 베란다와 텃밭의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키운 것인데, 햇볕이 부족한 베란다에서 키운 것은 키만 자라서 약하고, 밭 이랑에서 비닐을 씌워 키운 것이 훨씬 튼실했다. 밤고구마나 호박고구마 모종은 나중에 사서 심을 것이고, 심을 이랑은 몇 주 전에 만들어 비닐 멀칭을 해둔 상태다. 작년까지 하우스 뒤쪽 밭에 심던 고구마와 콩은 돌려짓기를 위해 올해는 하우스 앞쪽 밭에다 심기로 했다. 고라니란 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고구마와 콩의 잎사귀라서 하우스 앞쪽 밭에도 얼마전에 시멘트 말목을 세우고 높이 1.8m의 노루망 울타리를 튼튼히 설치해두었었다.
고구마 모종을 하면서 올해도 그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였다. 줄기를 잘라 꽂아놓고 물 한 모금씩만 주면 아무리 매마른 땅이라 해도 금방 뿌리를 내리며 일어서는 것이 고구마다. 원산지가 중ㆍ남아메리카(멕시코)라고 하고 또 어떤 학설은 남아시아(인도)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고향을 멀리 떠나 낯선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려면 저만한 근성은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일 아침엔 오늘 딴 상추와 아직 덜 자랐지만 몇 개 뽑은 양파를 씻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아내에게 갖다줄 것이다. 그러고는 바로 텃밭으로 가서 이번에는 외대깨가 아닌 가지깨를 두 이랑 심어야 하고, 3일만에 고사리도 꺾어서 삶고 말려야 한다. 그리고 참깨 파종을 한 이랑에는 순조로운 발아를 위해 분무기로 물도 뿌려줘야 한다. 예초기를 점검하여 텃밭 주변의 풀을 베고 수동식 잔디깎기 기계로 마당의 잔디를 깎는 일은 좀더 있다가 시간이 나면 해야겠다. 그밖에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다. 한창 알이 굵어갈 감자밭에 물을 줘야 하고, 고추, 토마토, 오이 이랑과 옥수수 이랑에 지주대를 세우고 줄을 쳐줘야 하며, 벌써 노린재가 몇 마리 관찰되고 개미가 오르내리는 복숭아나무와 포도나무에 살충제를 쳐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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