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자전거 사고事故

공산(空山) 2023. 5. 5. 21:18

아내가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해서 접이식 자전거 두 대를 차에다 싣고 영천 금호읍까지 간 것은 그저께 아침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타보지 못했던 길을 타기 위해 강변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금호강 자전거길을 상류 쪽으로 타기 시작했다. 당초에는 영천댐(자양댐)까지 자전거를 타고 왕복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 와보니 생각보다 먼 길이고 노면도 그다지 평탄하지 않아서 영천시장까지만 가서 그곳의 이름난 음식인 소머리국밥을 사먹고 돌아오기로 했었다.

강둑길은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향기로웠다. 그렇지만 소를 기르는 대형 축사 앞을 지나갈 때는 가축 분뇨 냄새가 잠시 코를 찌르기도 했다. 예전에 직장 친구들과 함께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며 밤낚시를 하던 곳도 눈앞에 바라보였다.

그렇게 강바닥과 강둑으로 난 자전거길을 30분쯤 타고 갔을까. 영천 시가지가 멀리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끊어지고 일반 도로의 갓길로 자전거를 타야 했다. 자동차 통행이 많지 않은 한적한 아스팔트 길이었는데, 10%쯤의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뒤따라 오던 아내의 신발 끄는 소리가 나고 비명이 들렸다. 큰일 났구나 싶어 뒤돌아보니 아내가 자전거와 함께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앞바퀴가 휘청거리며 넘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뒷브레크를 잡지 않고 앞브레이크를 급히 잡은 것 같았다.

아내는 어깨 쪽의 통증을 호소하며 오른쪽 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깨나 위팔뼈가 골절된 것임이 분명했다. 바지를 걷어올려보니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을 뿐 다른 외상은 없었다. 길 옆의 숲에 있는 평상에 아내를 쉬게 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다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내는 병원에 가도 어차피 점심시간일 테니까 점심이나 먹고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머리국밥을 영천이 아닌 하양 읍내에서 먹었는데, 아내는 오른손을 쓸 수가 없어서 왼손으로만 음식을 먹어야 했다.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원장은 어깨 쪽 상박골에 두세 군데의 골절이 있다며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하라고 했다.

정형외과 근무 경력이 많은 친구가 추천하는 병원으로 가서 CT와 MRI를 찍고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아내는 입원을 했다. 아내를 혼자 병실에 있게 하고 밤늦게 나는 집으로 갔다. 일전에 사둔 고추모종 50포기와 토마토, 참외, 가지 몇 포기씩을 비가 오기 전에 심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제 아침, 나는 서둘러 텃밭일을 하고 나서 아내의 수술시간에 맞춰 다시 병원으로 왔다. 11시 경에 수술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실의 정체로 오후 1시 반쯤에야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세 시간이 지나서 마취에서 아직 덜 깬 상태로 아내가 이송침대에 실려나왔다. 어깨에는 거즈가 두텁게 덧대어져 있었고, 팔을 고정해주는 보조기구를 찬 채 추워서 온몸을 떨며 헛소리를 하는 아내를 보자 나는 미안하고 안타깝고 후회스런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 4년 전,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땐 나보다 더 걱정하고 애달파하더니 이젠 자신이 병상에 누웠다.

2년 전에 자전거 타기를 권하며 아내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나였다. 나의 경험만 생각하며 아내도 나만큼은 탈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평탄한 강변 자전거길에선 나 못지않게 잘 타던 아내였는데 내리막에서 앞브레이크를 먼저 잡다니... 매사에 겁이 많은 편인 아내는 낯선 찻길에서 자전거를 타려니 겁이 났을 것이다. 게다가 무슨 걱정거리가 그리 많은지, 최근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울적해하다가 그날따라 나더러 자전거를 타고 바람쐬러 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고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수술한 부위가 많이 아프다고 하며, 팔을 고정하기 위해 목과 허리에 찬 보조기구가 불편하여 잠을 못 잤다. 오늘은 통증은 좀 가라앉았지만, 밤에 간호실에서 수면제를 타와서 먹고도 잠을 못 자고 있다. 날짜가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2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두어 달 동안은 재활치료도 받아야 할 것이며, 1년 후에는 뼈에 박은 철심을 제거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거 보세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자전거 타기는 너무 위험한 운동이라고요. 소식을 듣고 전화한 아들의 원망 섞인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이미 나버린 사고를 어쩌겠나. 앞으로 네 엄마는 자전거를 타지 않도록 해야지뭐. 겁이 나서도 이제 못 탈 거야. 그래도 얼굴이나 머리를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수술 후 이튿날, 봉합 부위를 소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