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길이라

입사동기들의 소풍

공산(空山) 2023. 2. 4. 17:22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긴 세월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다면 그건 입사동기들이겠다. 20대 중반의 젊은 시절이던 1982년 봄에 입사하여 30년 하고도 몇 년씩을 더 직장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했었다. 우리 동기들은 다른 기수들에 비해 입사 연령이 좀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진급에 대한 욕심이 적었던 반면에 그 치열한 공채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때문인지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다. 신사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생산기술 파트의 업무를 묵묵히 창의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그 동기들이 부산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다. 예전에 재직 중일 때부터 동기들과의 소풍은 연례행사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4년여 만에 가게 된 소풍이었다. 아침에 동대구역과 경산역으로 나누어 무궁화 열차를 탔는데, 부산역에 내려서 보니까 10명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에 따라 몇 년의 시차를 두고 퇴직하면서 두 친구는 무엇 때문인지 동기회마저 등져 버렸고, 지난해엔 한 친구가 암과 싸우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고, 또 한 친구는 뇌출혈로 쓰러져 몇 달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로 나간 동기도 대여섯이나 되는데, 그중엔 어리디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친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하마터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고 동기회와 세상을 한꺼번에 등질 뻔했던 친구가 하나 밝은 표정으로 참석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오늘 소풍할 코스에 대하여 연구하고 꼼꼼히 계획을 세워 온 회장이 안내를 맡았다. 부산역에서 택시를 나누어 타고 영도로 갈 예정이었으나, 승합차로 데려다 주겠다며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영도에 있는 '부산남고등학교' 앞에 내렸다. 그러고는 푸른 바다를 왼편으로 끼고 '절영해안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구간이 많았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영도 '남항시장' 안에 있는 한 허름한 식당에 도착하여 생선회와 함께 다들 좋아하는 '곰장어 구이'를 먹었다. 그곳은 자갈치시장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나이 탓인지 이제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아서 맥주 두어 병과 소주 서너 병을 비운 것이 고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한 사람이 다 마셔도 모자랄 분량이다. 동기회에서의 술 소비량이 급감한 데는 아마도 내가 술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오랜만의 모임이라서 그동안 못 했던 회칙 개정과 임원 개선도 하였다. 회칙 개정에선 회원이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주는 위로금을 2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대폭 줄였다. 그것은 회원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남은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육책으로 나온 안건이었다. 그리고 회의에서는 관례대로 투병 중에 있는 동기에게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약간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로 의결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서 다시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춥지도 않고 하늘은 맑았다. 요즘엔 관광객을 위해 매주 한 번씩만(토요일 오후 2시부터 15분간) 상판(床板)을 들어올린다는 영도대교를 건너 그 앞의 피란민 인물상과 함께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자신이 피란민이며 1943년생이라는 노신사가 나서서 단체사진을 찍어 주셨다. 노신사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라고 생각하는지 보따리를 안은 아이 인물상의 머리를 다정스레 쓰다듬었다. 우리는 자갈치 시장을 지나 국제시장 입구의 찻집에서 차를 마신 후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거기엔 경산역과 동대구역 쪽으로 우리를 다시 데려다줄 무궁화 열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송도 앞바다가 보인다(망원 촬영).
'흰여울해안터널'은 길이가 70m 정도로 짧다.
영도 '남항시장'의 식당에서
영도대교 위에서 바라본 풍경
영도대교 앞 '유라리광장'에서 피란민 노신사가 찍어준 사진
40년쯤 전의 입사동기들
40년쯤 전 가지산에서 찍은 사진.

'인생은 여행길이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장에 갔다가  (0) 2023.04.28
청산도행靑山島行  (0) 2023.04.09
서울 나들이  (0) 2022.11.19
동창들과의 소풍  (0) 2022.11.14
제주도 자전거 여행  (0) 2022.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