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길이라

청산도행靑山島行

공산(空山) 2023. 4. 9. 21:56

아내가 K산악회(여행사)에 청산도를 예약해 두었다고 해서 어제는 당일치기로 청산도에 다녀왔다. 새벽 6시까지 범어동의 리무진 버스 출발점으로 가야 했는데, 조금 일찍 집앞 큰 도로에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이날따라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길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구세주처럼 나타난 택시가 있어서 우리는 겨우 여행사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리산휴게소에서 여행사가 준비한 우거지국과 쌀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버스는 4시간 30분을 달려 완도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였고, 11시 10분에 출발한 배는 50분만에 청산도에 도착하였다. 주말이라서 배도 섬도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하는데, 섬 그 자체로 한 개의 행정단위인 면面이 되어 있다. 나의 고향인 옛 달성군 공산면公山面(지금의 대구시 동구 공산동)의 면적이 84km²인 것에 비하면 33km²인 청산도는 40% 정도의 크기다. 딸린 두 개의 큰 섬인 대모도와 여서도를 더해도 면적이 공산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슬로시티(slowcity)로 지정되어 있다.
 
섬에서의 일정은 산행을 위주로 할 사람들과 슬로길을 답사할 사람들로 나누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에 오후 5시 2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20분 전까지 청산도 여객선터미널에 모이도록 되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집에서 준비해간 간식과 현지에서 산 핫도그로 선창가 벤치에 앉아서 요기를 한 다음, 우선 셔틀버스를 타고(1만원/1인) 섬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선착장 부근에서 출발한 버스는 조금 가다가 '서편제' 영화를 촬영했었다는 유채꽃 언덕에 세워 주었다. 유채꽃은 개화 적기라서 샛노랗고 향기도 좋았지만 서풍이 너무 세게 불어서 사진찍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여그는 상서마을인디 돌담길을 쭉 둘러보시고 두 시까정 승차해 주시요잉. 셔틀버스 기사의 멘트는 짧았다. 버스 기사가 도중에 청산면의 역사나 구경거리, 마을의 규모와 인구 현황 등의 간단한 설명이라도 곁들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각 구간에 내려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후에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있었다고 한다. 그 버스 제도는 망해부렀지요. 매표소 아주머니의 말 속에는 버스 운행에 얽힌 아픈 사연이 있는 듯했다. 버스는 몇 군데 더 정차를 하였다가 한 시간 반만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울릉도처럼 섬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갈 배를 탈 시간까지는 여유가 많아서 아내와 나는 특산물 판매점에 들러 구경을 하다가 말린 톳 한 봉지를 사고, 선창가 노점의 할머니한테선 곱창김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음식점에 들어가 이른 저녁으로 회덮밥을 먹었다. 대구에는 밤 10시 40분쯤에 도착하여 지하철과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사랑길, 고인돌길, 낭길, 범바위길, 구들장길, 해맞이길, 노을길··· 한 사나흘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걸으면 좋았을 슬로시티 청산도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훌쩍 다녀온, 그런 하루였다.
 

청산도 관광안내도. 이 그림에서는 남쪽 먼바다에 있는 여서도가 빠져 있다.(이미지 출처 : 완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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