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길이라

동창들과의 소풍

공산(空山) 2022. 11. 14. 23:26

어제는 국민학교 동기생들과 함께 멀리 서해 대천 바닷가로 가을소풍을 다녀왔다. 아침 8시에 출발한 대형버스엔 모두 29명이 타서 빈 좌석이 많았다. 나는,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는 추세에 있는 때에 밀폐된 버스 안에서 종일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았으나, 회장의 권유에 못 이겨 참석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모임이 없었는데, 몇 년만에 가는 동기회 소풍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얼마 가지 않아 음주가무는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에 몸에 밴 희노애락을 각자의 십팔번에 실어 모두 풀어놓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차창을 커튼으로 가리고 통로에 나와 디스코 메들리에 맞춰 이른바 '관광버스 춤'을 추었다. 내가 젊었을 적에는 행락철에 길을 가다가 이런 가무로 들썩이는 관광버스를 보면 몰이해를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었는데, 이젠 내가 그런 버스에 타고 있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워낙 소질이 없는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뒷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해서 바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키조개 삼합'으로, 가리비, 키조개, 전복, 왕새우를 프라이팬에 굽고 콩나물과 밥과 함께 볶아서 먹는 것이었다. 유명 관광지라서 그런지 음식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천해수욕장의 잔잔한 바다는 여전하였다. 젊었던 시절, 아이들이 아주 어릴적에 직장의 여름 캠프가 이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가족이 와서 2박3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앞바다의 섬들도 여전하였지만 해변의 음식점이나 숙박 시설들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나는 백사장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 모래를 한 줌 떠 손바닥에 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옛날에는 부서진 조개껍데기가 모래 성분의 대부분이어서 놀랍고 신비로웠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달리 대부분이 강 모래가 아닌가. 그리고 백사장은 예전에 비하여 훨씬 폭이 좁아진 것 같았다. 까닭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 봤더니, 모래 언덕에 해안도로나 인공구조물을 설치한 탓에 백사장이 침식되어서 해마다 육지의 모래를 사다가 들이붓고 있는 형편이란다.

그렇게 백사장에 서서 잠시 옛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어느새 친구들이 사진을 찍는다며 몰려왔다. 나는 거기에 휩쓸려 바다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지금 이 순간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라고, 그래서 늙어가면서도 사진은 계속 찍어야 한다던 옛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셀카봉'을 들고서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서풍처럼 다가온 친구들은, 그리고 배경이 된 바다는, 저세상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한 친구를, 한 생명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진들에 비해 셀카봉으로 찍은 사진은 무척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었다. 인물들의 표정, 과장된 원근감, 철지난 바닷가, 기울어진 수평선 등이 모두 그런 느낌을 주는 데 이바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천해수욕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섬 죽도에 들러서 지붕이 있는 산책로를 걸어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그 섬은 길지 않은 방조제 위로 난 도로에 연결되어 있어서 이젠 섬이 아니었다.

'언젠가 사진 한 장
가슴에 묻고 갈 사람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이어진 가무에서 한 친구가 부르는 노래의 저 한 구절이 내 귓전을 때리는 것이었다.



어릴적 한동네에서 살던 친구들끼리
이 셀카봉 사진이 무척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다.
죽도 '상화원'

 

'인생은 여행길이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사동기들의 소풍  (0) 2023.02.04
서울 나들이  (0) 2022.11.19
제주도 자전거 여행  (0) 2022.10.18
청사포에 갔다  (0) 2022.01.09
울산 부산 김해 여행  (0) 202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