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톱과 귤 - 유희경

공산(空山) 2023. 1. 8. 11:51

   톱과 귤

          —고백

   유희경

 

 

   톱을 사러 다녀왔습니다 가까운 철물점은 문을 닫았길래 좀 먼 곳까지 걸었어요 가는 길에 과일가게에서 귤을 조금 샀습니다 오는 길에 사면 될 것을 서두르더라니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귤 담은 비닐봉지가 톱니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지 뭔가요 후드득 귤 몇 개가 떨어져 바닥에 굴렀습니다 귤을 주워 주머니마다 가득 채우고 돌아왔습니다 아는 얼굴을 만나 귤 몇 개 쥐어주기도 했습니다 한두 개쯤 흘린 것 같은데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귤이 자라 귤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귤을 심으면 귤이 자라나나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귤 나무가 자라면 이 톱으로 가지치기를 해야겠다고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지고 온 귤은 모두 꺼내두었는데도 그 뒤로 한 며칠 주머니에서 귤 냄새가 가시지 않아요 톱이요톱이란 게 늘 그렇듯이 쓰고 어디다 잘 세워두었는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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