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쓰러진 마음 - 조용미

공산(空山) 2022. 9. 22. 20:14

   쓰러진 마음

   조용미

 

 

   쓰러진 사람은 왜 쓰러진 걸 보게 되는 걸까

 

   며칠 폭우가 이어진다기에 비를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멀리 갔다 작은 여닫이창이 있는 고택에서 빗소리 속에 잠들었다

 

   굵은 빗소리에 깨어 방문을 열었다 낙숫물받이에 모인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툇마루에 앉아 빗방울에 모래알과 흙이 자리를 바꾸며 조금씩 움직이는 걸 바라본다

 

   구석구석 젖지 않는 마음이 없어 일어났다

 

   들길을 걷다 물이 넘칠 듯한 강변길을 지나다 멀리 노란색에 끌려갔더니 해바라기 밭이었다

 

   바깥쪽의 해바라기들은 나와 비슷하게 뻣뻣하고 위로 올라서니 안쪽의 해바라기들이 보였다

 

   해바라기밭에는 두 종류의 해바라기가 있다 가운데 있는 해바라기들은 모두 비스듬히 쓰러져 누워 있다

 

   쓰러진 사람은 쓰러진 걸 보게 된다

 

   해바라기가 나타난 이유가 있는데 안 보이는 곳의 해바라기는 모두 쓰러져 있는데, 비는 계속 내린다

 

 

   ―《공정한시인의사회2020. 12.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편지 - 최하림  (0) 2022.09.27
관해(寬解) - 조용미  (0) 2022.09.22
말하고 싶지 않은 말 - 이바라기 노리코  (0) 2022.09.22
서쪽 - 이채민  (0) 2022.09.16
물의 집 - 박제천  (0)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