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서쪽 - 이채민

공산(空山) 2022. 9. 16. 13:07

   서쪽

   이채민(1958~ )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을 오래 본다

 

   절반도 쓰지 못한 하루가 사라지는 곳

 

   고요한 감전의 이야기가 고여 있는 곳

 

   한 생의 꽃이 피고 기우는 곳

 

   스무 살의 여우비와
   거짓말 같은 사람들도 그곳에서
   왔고, 갔다

 

   누워서 똥을 싸는 꿈을 꿨는데
   서쪽은 부끄럽지 않았다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들과 바람이
   어디쯤에서 쉬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심지 않은 풀에서도

 

   서쪽 냄새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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