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어린 순례자

공산(空山) 2022. 9. 7. 20:40

   어린 순례자

   우대식

 

 

   원주 어느 고등학교 밴드부였던 어린 외삼촌은 옥상에서 허벅지를 터지게 맞고 집으로 돌아와 하모니카를 불었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그러면 더 어린 나는 한낮의 쓸쓸함을 앓곤 하였다. 외삼촌은 자전거 앞에 앉고 나는 뒤에 앉아 어린 낚시꾼이 되어 낚시터로 줄달음질치기도 하였다. 쨍쨍한 여름 햇살 아래 어린 낚시꾼 둘은 붙어 앉아 흔들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밴조를 메고 떠나는 앨라배마를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삼촌 앨라배마가 어디야. 응 멀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앨라배마는 없나. 해가 질 무렵 자전거를 끌고 기찻길 옆으로 걸어가면서 서로의 등짝에 찍힌 선연한 주홍빛 놀을 보며 놀라곤 하였다. 엄마가 없던 나를 외삼촌은 토닥였던 것 같고 아버지가 없던 그를 나는 불쌍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 수재너여 노래 부르자. 하늘 높이 떠 있던 기찻길을 쳐다보며 어린 순례자의 날이 저물던 앨라배마로 가는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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