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시(詩)

공산(空山) 2022. 9. 6. 19:45

   시(詩)

   우대식

 

 

   음악 아닌 것으로 음악하기

   나인 것을 나 아닌 척하기

   가을날 듣는 만가(輓歌)

   겨울날 곁불을 옆에 두고 옹송거리며 마시는 낮술

   사람은 거리를 두고 그림자 사랑하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기

   그리워하다가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

   악다구니로 떼쓰며 울다가 아무 보는 이 없을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 털기

   꾀죄죄한 민낯으로 설산(雪山)에 대적하기

   눈이 멀어도 먼 것을 모르고 형형색색 달콤하게 이야기하기

   신을 실컷 조롱하다가 그 발아래 한없이 통곡하기

   영원한 것이 있나요

   이런 물음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 나그네처럼

   우물가에 오래 앉아 있기

   아주 오래도록 허공을 응시하다가 저 푸른 한 점으로

   쑥 들어가기

 

 

   --《시와 시학 2018년 봄호

   --『베두인의 물방울』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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