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우대식
음악 아닌 것으로 음악하기
나인 것을 나 아닌 척하기
가을날 듣는 만가(輓歌)
겨울날 곁불을 옆에 두고 옹송거리며 마시는 낮술
사람은 거리를 두고 그림자 사랑하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기
그리워하다가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
집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기
악다구니로 떼쓰며 울다가 아무 보는 이 없을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 털기
꾀죄죄한 민낯으로 설산(雪山)에 대적하기
눈이 멀어도 먼 것을 모르고 형형색색 달콤하게 이야기하기
신을 실컷 조롱하다가 그 발아래 한없이 통곡하기
영원한 것이 있나요
이런 물음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 나그네처럼
우물가에 오래 앉아 있기
아주 오래도록 허공을 응시하다가 저 푸른 한 점으로
쑥 들어가기
--《시와 시학》 2018년 봄호
--『베두인의 물방울』여우난골,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