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의 고백
우대식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떤 아나키한 개의 기억
-- 후지와라 신야
세상에 믿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조금씩 무언가에 위안을 주며
더러 위안을 받으며 살아갈 뿐,
그러므로 어떤 교훈도 그리 유용치 못하다
가장 똑똑하게 목도하는 진실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
죽어갈 것이라는 사실
모든 생명 안에는 야차가 있다
'나'라는 곳으로 지독하게 '나'를 몰고 가다가
어느 순간 지상에 툭 내팽개친다
'아나키'란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뚝 떨어진 존재,
'아나키'란 묻혀간다는 점에서
죽음에 가깝다
뚝 떨어져 묻혀가는
하나의 슬로모션
끝까지 슬로모션
종점을 향해
--『베두인의 물방울』여우난골,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