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나랑 입사동기가 되었던 친구 금용은 정년퇴직 후에 새로 땅을 마련하여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곳은 그의 고향 부근인 풍기읍의 소백산 자락인데, 멋진 농막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반년이 넘었지만 코로나 펜데믹과 나의 게으름 탓에 그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오늘 구경을 가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출발하여 고속도로와 국도를 2시간 가까이 달려 열시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가 이곳으로 아주 이사를 한 것은 아니어서 경산에서 여기까지 가끔 내왕을 하려면 멀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지막하면서도 예쁜 철 대문 앞에 차를 세우니 주인 부부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농막은 미리 사진으로 보았던 대로 소백산 자락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남향으로 서 있었다. 대문을 통과한 진입로 양쪽엔 제법 많은 종류의 관상용 관목과 화초들이 가꾸어져 있었고, 집앞 넓은 텃밭에는 고구마, 고추, 참깨, 콩, 옥수수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친구가 봄부터 지금까지 여기 살다시피 하면서 정성을 쏟아 꾸미고 가꾼 결과이리라.
통나무로 만든 댓돌을 딛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여섯 평 농막이 생각보다 넓었다. 벽과 천장은 모두 향기롭고 결이 고운 소나무 판재로 마감 처리되어 있었다. 거실 겸 주방에는 안락의자 두 개와 앉은뱅이 탁자가 놓여 있고, 화장실 앞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방으로 된 아늑한 침실도 있었는데, 그 침실의 천장도 꽤나 높아서 큰 불편은 없을 것 같았다. 동편의 쪽마루가 있는 곳에도 새시와 창문을 별도로 설치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물은 이웃 농막에서 지하수를 끌어와 쓴다고 했다.
무엇보다 거실에 앉아서 바라보는 전망은 일품이었다. 눈 아래로 보이는 계곡 건너편으로는 멀리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그 뒤쪽에 높이 솟아 있는 소백산 도솔봉엔 구름이 잠시 내려와 있었다. 도솔봉의 완만한 자락엔 농막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전망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예전에 한 번 가 보았던 알프스(스위스)에 다시 간 느낌이었다. 겨울이 와서 온통 눈으로 덮이면 또 얼마나 멋진 풍경이 될까.
땅 600평에 평당 30만원, 이동식 농막 3천만원, 조립식 대형 파라솔 1백만원, 철제 대문 1백만원, 진입로의 야자매트 30만원, 쪽마루 새시 1백만원... 이런 식으로 친구가 여기에 투자한 금액이 적잖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TV를 보는 대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이나 몇 권 머리맡에 두고 읽으며 단출하게 사는 것도 참 멋진 것 같았다. 나는 본디 산가가 텃밭 가까이에 있지만 그 산가도 정리해 버리고 앞으로 텃밭에다 이렇게 농막을 한 채 지어 살고 싶어졌다. 그러러면 지금부터 자꾸 버리며 정리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농촌이 자꾸만 비어져 가는 현상을 막으려면 이런 농막 생활이라도 정부에서 권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를테면 6평 한도를 몇 평 더 늘려 준다거나, 외딴 농막의 상수도 설치비를 보조해 준다거나.
희방사 계곡 입구 쪽으로 가서 오리고기 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점심을 사려고 했으나 굳이 친구가 점심값을 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최근에 지어져 임시 개장되었다는 '선비세상' 구경을 갔지만 아직 일반인에겐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부근의 소수서원을 둘러본 뒤 차를 마셨다. 오늘 이곳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예보가 빗나가서 비는 맞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는 동해안을 경유해서 1박하고 돌아올 계획이었으나, 동해안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바로 대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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