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위의 귀
임재정
사자쑥 마른 잎을 두드리며 싸락눈이 내린다
공기를 흰 소리의 입자들이 가득 채워 부풀어 오를 때
박하 향처럼 환해지는 귀가 있다
손목의 맥을 내어놓고 벤치에 기댄 소녀
손목에 와서 우는 눈물만을 모아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
커다란 귀 하나로 발가락 끝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심장의 울퉁불퉁한 감정을 더듬어보고 있다
옷깃 틈으로 목덜미 사이로 뛰어들어 싸락눈이 건네는 깔깔한 습기
감은 눈꺼풀 안쪽으로 스미고 쟁여진다
몸 기울여 따르면 무엇이든 움켜쥐고 매달리는 물방울들의 버릇 큰뿔사슴이 모가지 문지를 때의 사시나무처럼 조금 흔들렸을까
부끄러워 가지마다 달려 있던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을까
바깥에 떨어져 귀 안쪽으로 쌓인다 고개를 들면 딸기처럼 잠시 얼굴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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