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섬이 되려면
김점용(1965~2021)
혜통은 눈을 감고 말이 없다
제 몸의 살을 죄 발라내는 중이다
바람과 파도가 누생을 바쳐 깎아낸 섬
저 섬에 가야 한다
가서 그대로 섬이 되어야 한다
합장한 채 바람과 파도의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잡아먹고 버렸던 수달의 뼈가
피 뚝뚝 흘리며 제 살던 굴로 가서
다섯 새끼를 안고 있었다니*
제사 때 입던 어머니 광목치마 한 필 뜯어
놋수저 한 벌
고무신 한 짝
삭발한 머리털 세 올
조심조심 보따리를 싸야 한다
피 냄새 풍기는 보따리를 메고
앙상한 뼈로 헤엄쳐 가야 한다
물새처럼 뼛속에 바람을 넣어
한밤의 물결을 타야 한다
그림자뿐인 저 무주공산 정수리에
살육의 손바닥으로 우물 하나 파야 한다
그 우물에 뜬 달을 타고
하늘 섬으로 올라야 한다
*삼국유사 혜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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