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 박형준

공산(空山) 2021. 7. 28. 09:42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박형준(1966~ )

 

 

   들일을 하고 식구들 저녁밥을 해주느라

   어머니의 여름밤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한밤중 나를 깨워

   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

   등목을 청하던 어머니,

   물을 한바가지 끼얹을 때마다

   개미들이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은

   까맣게 탄 등에

   달빛이 흩어지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펌프질을 하며

   어머니의 등에 기어다니는

   반짝이는 개미들을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물로 씻어내던 한여름 밤

   식구들에게 한 번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던

   어머니는 달빛이 참 좋구나

   막내 손이 약손이구나 하며

   시원하게,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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