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모란의 연(緣) - 류시화

공산(空山) 2021. 7. 25. 21:58

   모란의 연(緣)
   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 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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