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저 섬이 되려면 - 김점용

공산(空山) 2021. 8. 17. 16:17

   저 섬이 되려면

​   김점용(1965~2021)

 


   혜통은 눈을 감고 말이 없다

   제 몸의 살을 죄 발라내는 중이다

   바람과 파도가 누생을 바쳐 깎아낸 섬

   저 섬에 가야 한다

   가서 그대로 섬이 되어야 한다

   합장한 채 바람과 파도의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잡아먹고 버렸던 수달의 뼈가

   피 뚝뚝 흘리며 제 살던 굴로 가서

   다섯 새끼를 안고 있었다니*

   제사 때 입던 어머니 광목치마 한 필 뜯어

   놋수저 한 벌

   고무신 한 짝

   삭발한 머리털 세 올

   조심조심 보따리를 싸야 한다

   피 냄새 풍기는 보따리를 메고

   앙상한 뼈로 헤엄쳐 가야 한다

   물새처럼 뼛속에 바람을 넣어

   한밤의 물결을 타야 한다

   그림자뿐인 저 무주공산 정수리에

   살육의 손바닥으로 우물 하나 파야 한다

   그 우물에 뜬 달을 타고

   하늘 섬으로 올라야 한다

 

 

   *삼국유사 혜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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