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눈사람 - 이영옥

공산(空山) 2021. 7. 10. 06:16

   눈사람

   이영옥

 

 

   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반쯤 뭉개진 눈사람이 서 있다

   털목도리도 모자도 되돌려주고

   코도 입도 버리고 눈사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수 물질로 분해되기까지

   우리는 비로 춤추다가 악취로 웅크렸다

   지금은 찌그러진 지구만한 눈물로 서 있다

   눈사람이 사라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사람이 섰던 곳을 피해 걷는 것

   당신을 만들어 나를 부수는 사이

   뭉쳤던 가루가 혼자의 가루로 쏟아졌던 사이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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