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로마로 가는 길 - 김나영

공산(空山) 2021. 5. 24. 21:46

    로마로 가는 길

    김나영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 봤으면서 속도에 미쳐 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빨리 피는 꽃이 빨리 진다는 말도 이제 그만할게 수직의 길이든 평평한 길이든 우회전도 하고 좌회전도 하고 슬슬 좀 가자고 길가에 쑥부쟁이 허리가 흐드러져 있으면 향기의 허리도 휘청 끌어당겨 보고 길 가다가 바람미술관이 있으면 내려서 바람의 설계도를 관람하다가 또 길 가다가 배고프면 그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에서 탁자 위에 눌어붙어 있는 시간의 각질과 고양이 낮잠 같은 느린 공기에 스며들어 보다가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도열해 있는 카페에 가서 한 잔의 커피가 있는 풍경에 우리가 천천히 겹칠 때까지 있다가 가면 안 되겠니 로마에 누가 있어서 가는 건 아니잖아 파리로 우회해서 가는 건 어떨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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