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양안다의 「나의 작은 폐쇄병동」 평설 - 강인한

공산(空山) 2020. 7. 20. 08:58

   나의 작은 폐쇄병동

   양안다

 

 

   첫 감기에 시달리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듯 너는 나를 쓰다듬지 초점 풀린 눈을 감겨 주려고

   길지 않은 휴일 내내 너는 네가 그린 그림에 섞이기 위해 영혼을 기울였고 종종 길고양이가 울었어 나는 웅크린 채로 금단의 터널 한가운데에 있었지 달이 뜬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적시고 사라졌지만 나는 너의 메마른 입술만 바라봤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숨을 내쉬는 모습이 고요했고

   청력이 쏟아지는 밤, 우리의 내부보다 컴컴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지 나의 편지와 너의 그림 속에서 죽어 가는 인물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내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물을 참는 일이라서

   주먹을 움켜쥐고

   새벽마다 너는 목도리로 얼굴을 뒤덮고 산책을 나섰지

   상자에 작은 새를 담아 두는 마음으로 너를 이끌었어 너에게 말하지 않았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회복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었지

   *

   때때로 아침이면

   창가로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고

   잠든 너에게로 햇빛이 쏟아진다

   나는 이 느낌을 사랑해

   지난밤이 벗어 두고 간 허물을 정리하는 일

   탄산 빠진 병을 잠그고

   우리 중 누군가가 흘렸을 술을 닦는다

   샌드위치 봉지에선 악취

   잠든 너의 곁을 지날 때는 까치발로,

   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몇 시냐고 물으면

   조금 더 자요 조금만 더,

   너에게 필요한 잠을 부르고

   젖은 수건에서 개 냄새가 난다

   향초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문다

   너의 가슴은 고요하게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필터가 축축히 젖을 때까지

   너의 얼굴 위로 햇빛이 떨어지는 장면

   누가 오전의 귀를 잡아당긴 듯이

   점점 느리게

   나를 관통한다

 

   *

   그러나 견딜 수 없었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밤이면 꿈에서 모진 돌만 골라 주머니에 넣은 채 강가로 뛰어드는 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열 속에서 나는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현기증을 지문에 가두고 있었던 걸까요

   창문을 열어 줘, 우리에게 소량의 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양들은 자신의 이름을 외우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사소하고 허무하고 시시한 농담으로 세상을 웃길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목을 매어도 좋겠지요 한겨울에도 비가 쏟아집니다 우리가 흘린 술은 증발되어 어디로 가는 거죠?

   눈을 떠, 오래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감길 때

   눈을 떠, 내가 너를 바라보려 애쓸 때

   모든 계절을 반으로 나누어 우리가 여덟 개의 계절을 갖는다면

   이불로 감싸도 나는 내 몸을 쪼갤 듯 주체할 수 없었지만

   네가 두 눈을 뜨자

   두 개의 달이 뜬다

   *

   너에게 원했던 건 투명하고 둥근 병과 알약을 나의 손 안에 안겨 주는 것 나는 모든 것이 타 버린 숲의 잔재 속에 있어 열이 오르는데 온 세상이 정지한 듯 얼어붙고 있어

   피가 나도록 손등을 물어뜯었지 이 밤 어디선가 새 울음이 들리지만 너는 꿈속에서 들려오는 선율이라 단정하고

   오래된 꿈에 두고 온 작고 작은 생물이 문득 떠올라 버려서

   질끈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현기증이 흩날리고

   네가 침 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불가해한 감정을 요구할 때

 

   수백 그루의 벚나무

   눈송이처럼 조각난 칼날을 떠올렸어 예쁜 피, 예쁜 마음, 중얼거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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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의 매력은 참신함과 가능성(=미숙함)에 있지요. 양안다의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는 세 번짼지 네 번째 시집인데 언제까지 성숙을 기대하며 가능성이 보인다고 마냥 칭찬할 순 없겠지요. 시집 전체를 다 보지 않고 한 작품으로 평가함은 온당하지 않다고 항변할까요. 장독의 간장을 훌훌 전부 다 들이켜야만 간장 맛이 어떻다고 품평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나의 작은 폐쇄병동은 전문 6페이지에 걸친 의욕적인 작품. 시인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운 한 작품만 살펴 음미하여 평가를 내려서 크게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소실점(消失點)은 본디 서양미술에서 원근법이 표현된 아득하게 멀어지는 공간 속의 평행선이 만나는 것 같은 하나의 점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시집에선 불타서 없어진다는 소실(燒失)’로 귀결되어서 어처구니없는, 중의적 표현도 아닌 난센스에 불과합니다.

   이 시 마지막 장()에 보면

 

   너에게 원했던 건 투명하고 둥근 병과 알약을 나의 손 안에 안겨 주는 것 나는 모든 것이 타 버린 숲의 잔재 속에 있어 열이 오르는데 온 세상이 정지한 듯 얼어붙고 있어

   ‘모든 것이 타버린 숲에서 소실(燒失)됨을 말하면서 황당하게도 난센스 퀴즈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시집 표제 중 소실점을 향하여라는 부분은 당연히 아스라한 평행선이 멀리서 만나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룬 가운데 그 소실점을 멀리 내다보며 지향한다는 미래지향적인 소망인가 싶었는데, 그게 갑자기 불타 없어져버린 지점이라는 소실점(燒失點)으로 바뀜은 야바위꾼에게 사기당한 듯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부분적으로 매혹이 될 만한 첫 감기에 시달리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듯”, “네가 그린 그림에 섞이기 위해 영혼을 기울였고, “나는 웅크린 채로 금단의 터널 한가운데에 있었지, “창가로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고/ 잠든 너에게로 햇빛이 쏟아진다/ 나는 이 느낌을 사랑해”, “누가 오전의 귀를 잡아당긴 듯이/ 점점 느리게/ 나를 관통한다,”등 작고 예쁜 구절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로 이 시 전체가 아름다운 연시로 포장되어선 안 되겠지요. 전체적으로 보면 시적 화자를 환자로 설정하고 너는 나를 보살펴주는 보호자 혹은 연인으로 무조건의 보살핌을 주는 존재입니다.

 

   청력이 쏟아지는 밤, 우리의 내부보다 컴컴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지 나의 편지와 너의 그림 속에서 죽어 가는 인물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내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물을 참는 일이라서

 

   시 속의 는 편지()를 쓰고 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그럴싸한 상상의 허구 속에 자기들이 설정한 인물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무능을 고백하면서 작중 인물들에게 연민의 눈물을 참는 감정의 과잉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용문 처음에 나오는 청력이 쏟아지는 밤을 어떤 상황으로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맹랑한 표현이군요. 하지만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밤이면 나는 꿈속에서 돌멩이를 가득 주머니에 넣은 채 버지니아 울프처럼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때도 있었나 봅니다.

 

   “샌드위치 봉지에선 악취”, “젖은 수건에서 개 냄새가 난다”, “[담배]필터가 축축히(축축이) 젖을 때까지”, “누군가가 흘렸을 술을 닦는다”, “네가 침 범벅이 된 얼굴로등 지저분하고 혐오감이 드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불순하고 불결한 사랑을 시인은 내심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어떤 시적 표현을 위한 기교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건 마치 뭔가 근사한 게 있는 양 멋진 제스처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무의미한 맹탕에 지나지 않는 말들이지요.

 

   “나는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현기증을 지문에 가두고 있었던 걸까요

   “우리에게 소량의 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양들은 자신의 이름을 외우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사소하고 허무하고 시시한 농담으로 세상을 웃길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목을 매어도 좋겠지요

 

   양안다의 나의 작은 폐쇄병동이란 시에서 나는 폐쇄병동의 환자며 너는 나를 돌보는 애인이거나 보호자, 아니면 타인의 간섭이 없는 폐쇄 공간에서 서로의 병증을 돌보며 동거하는 연인들일까요. 외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폐쇄병동에 너와 나만 병실에 은밀하게 존재하는데 시인은 여기서 불결하며 금단의 불순한 연애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데카당한 사랑이 무조건 독자들에게 멋지고 아름다운 서정의 치장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시인은 계산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 강인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