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접목을 하며

공산(空山) 2020. 4. 6. 22:46

어릴 적에, 그러니까 국민학교 오륙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실과' 교과서에 나온 접목법을 배우고 나서 앞마당의 감나무 가지를 꺾어 뒤안의 돌감나무에 접붙이기를 해 본 것이. 그때가 가을이라서 가지접은 못하고 눈접을 몇 군데에다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끝내 실패를 하고 말았었다. 1주일쯤 후에 잎자루가 떨어져야 눈접이 성공한 것인데, 잎자루가 말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듬해 어느 봄날에 그 돌감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다 아버지와 함께 가지접 붙이기를 하여 성공은 했지만, 그것도 몇 년 잘 자라다가 바람에 접목 부위가 부러지고 말아 결국은 감이 열리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뒤부터 내게는 접목이 어렵게만 느껴져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었다. 나무를 번식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씨앗을 심는 실생법이나 꺾꽂이, 포기 나누기만 가끔 했을 뿐이다. 물론 실생법이나 꺾꽂이도 아무 나무에나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유튜브에서 많은 농부들이 저마다 접목에 대한 노하우를 얘기하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거기엔 접목뿐만 아니라 두더지 퇴치법, 고추 다수확 재배법, 천연 살충제와 제초제 만들기 등과 같은 텃밭 가꾸기에 대한 온갖 지식과 체험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우선 접목의 계절이 가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접목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대목(臺木)과 접지(椄枝)의 굵기나 상황에 따른 쪼개기접, 설접, 드릴접, 그루터기접, 고접, 눈접 등등. 그런데, 이번에 내가 알게 된 것은 옛적의 실과 교과서에 실려 있던 그 'T자 눈접'은 지금은 낮은 성공률 때문에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T자 눈접은 대목과 잘라낸 눈의 부름켜끼리 맞추기가 근본적으로 쉽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깎아낸 눈의 크기만큼 대목의 껍질도 깎아낸 다음 그 자리에다 눈을 맞추어 비닐 테이프를 감아주는 방법을 많이 쓰는데, 그것이 부름켜끼리 잘 맞출 수 있어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배운 접목 기술을 지지난 주부터 텃밭에다 적용해 보기로 했다. 적용하지 않은 기술이나 지식은 이내 무용지물로 사장되기 마련이다. 먼저 복숭아나무다. 내가 가꾸고 있는 '미황'이라는 품종은 본디 맛은 좋지만 조생종이라, 운이 나쁜 해엔 장마철에 익어서 당도가 떨어지고 싱거운 맛이 된다. 과육이 물러서 오래 저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 이웃 밭의 만생종 복숭아나무(이름은 잊었다)를 전지할 때 주워 와 땅에 묻어 둔 가지를 접목했다. 미황의 가지를 대목으로 하고 만생종 가지를 접지로 하여 설접으로 붙였다. 초보라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년부터는 미황과 새로운 복숭아를 여름부터 가을까지 시간차를 두고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심은 체리 묘목의 윗부분을 잘라서 복숭아나무와 매화나무에 접붙였다. 살구나무 신품종과 자두나무도 가지접과 눈접으로 붙여 보았다. 복숭아, 체리, 매화, 살구, 자두, 벚나무는 모두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여 서로 대목과 접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숭아나무에 체리와 살구와 자두가 함께 달리고, 매화나무에도 한쪽 가지에선 복숭아와 체리가 달릴 것이니, 내년에는 나의 텃밭이 가관이겠다.

 

일전엔 주인이 며칠 집을 비우고 없는 뒷집 마당에 가서 벚나무 웃자란 가지 하나를 잘라내고 거기에다 체리나무(라핀) 가지를 접붙여 두고 왔다. 그 벚나무에 검붉은 체리가 주렁주렁 열리는 이변이 오는 날, 주인장이 놀라 자빠지지는 않으실지 모르겠다.

 

매화에 살구 접목
체리 라핀에 타이톤 눈접
올복숭아(미황)에 늦봉숭아 접목. 2주일 만에 접지에서 꽃이 정상적으로 피어서 놀랍다.
한 나무에서 왼쪽 가지엔 자두, 오른쪽 가지엔 복숭아가 열려 있다. (2022.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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