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
유병록
자주 가는 그 카페는 이층집이다
나는 이층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거나 밀린 일을 하거나 글을 쓴다
이따금 잘못 알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다
옥상 출입금지라는 붉은 글씨와 마주친다
나는 그 카페의 단골이지만
한번도 옥상에 올라간 적이 없으므로
놀랄 것 없다
그곳에 죽은 구름들의 무덤이 즐비하거나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새들이 날아와 안락사당하는 병원이 있다고 해도
카페 주인은 친절하고 미소를 잃지 않지만
반정부 단체의 우두머리일지도 모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직원 외 출입금지이므로
놀랄 일 없다
그곳에서 도시 하나쯤 가뿐하게 날릴 수 있는 폭탄을 제조한다고 해도
장물아비들의 소굴이라고 해도
나는 주말마다 카페 이층에 앉아 있고
주인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우리의 궁금증은 서로 묵음이다
이층에서 내려와 문을 나설 때
우리는 가볍게 웃으며 헤어진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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