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북어를 위한 헌사 - 송종규

공산(空山) 2020. 3. 7. 16:20

   북어를 위한 헌사

   송종규

 

 

   그 때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제부터 나는 그 곳에 있었는지

 

   때로 계절 밖인 듯하고 때로 꽃의 안쪽인 듯한 나의 시간은 깊은 밤에 찾아오는 한 줄 문장처럼 웅크리고 있다 아마 나는 얼음의 세월을 건너 온 듯하다 아마 나는 이글거리는 불꽃의 중심을 건너 온 듯하기도 하다 천만 번, 꽁꽁 얼어서 매달려 본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의 방 분홍 그 환한 언저리에서 붉은 물이 스며 나올 때

 

   수천의 손들이 유령처럼 흔들리는 공중에서

 

   당신이 갈기갈기 찢은 살들이 노을을 받으며 성체처럼 빛날 때

   무수히 많은 슬픔의 층계들이 마른 잎사귀처럼 엎드려 있고 불행이 별빛처럼 태연히 도착하기도 한다 당신은 바람과 구름 숲 속으로 들어가고 이 난감한 문장을 추스르는데 나는 다시 천년이 필요하다

 

   북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한 생애를 집약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이 세계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이 명명命名하는 모든 것들

 

   바람이 분다, 비릿한 냄새가 천지에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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